정부가 건강보험 보장률을 63%에서 70%까지 끌어올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실손의료보험이 존폐 기로에 놓였다.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방안/자료 보건복지부, SK증권
실손보험은 가입자가 실제로 쓴 의료비를 돌려주는 민영 의료보험으로, 우리 국민 3300만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이라 불린다. 금융감독원을 중심으로 실손 보험료 인하를 압박하면서 보험사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18알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키로 한 ‘문재인 케어’가 실손의료보험에 미치는 영향과 실손보험료 책정의 적절성 여부를 두고 분석에 나섰다.
금감원 분석결과를 토대로 금융당국은 실손보험 구조를 전면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전날 보험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해 "건강보험 보장 확대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함께 실손보험 손해율 하락 효과를 정밀 분석하고, 현 실손보험 구조의 전면 개편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3800여개 비급여 진료 항목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게 문재인 케어의 골자인 만큼 실손보험의 비급여 보장과 보험금 지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의료비를 보장하기 때문에 건강보험 보장이 확대되면 보험사가 실손보험금으로 내줄 돈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판단과 달리 수년간 건강보험 보장이 확대돼 왔는데도 실제 보험사들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줄지 않았다. 비급여 과잉진료 탓에 손해율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해 온 것이다.
정부는 2012~2015년까지 검사·시술·약제 370항목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거나 보장 범위를 확대했고, 2016년에는 4대 중증 초음파검사 전면급여, 수면 내시경 급여 적용 등 고비용 필수 검사에 대해 건강보험 혜택을 확대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생보사 14곳의 2016년 실손보험(노후실손 제외) 평균 손해율은 123.9%였다. 이는 2014년(97.35%), 2015년(97.95%)에 비해 25%포인트 이상 상승한 것이다.
손보사 10곳의 지난해 실손보험 평균 손해율도 142.37%였다. 2014년(143.5%), 2015년(144.4%)과 비슷한 수준이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보험사가 받은 보험료 대비 지출한 보험금 비율을 의미한다. 실손보험은 위험보험료 방식으로 손해율을 산출하는데, 이 비율이 100% 이상이면 보험사가 받은 보험료보다 더 많은 보험금을 줘 적자가 났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국내 의료비는 급여와 비급여로 나눠진다. 예를 들어 정형외과에서 스트레스근육 치료를 받고 병원비가 10만원이 청구될 경우 6만원은 건강보험으로 보장받고 자기부담금은 2만원, 나머지 2만원은 실손보험이 적용되는 비급여다.
현재 각 급여의 코드화가 이루어있지 않아 소비자 보험사기, 의료공급자의 도덕적 해이로 과잉진료가 만연했다. 이 탓에 손해율이 상승하고 결국 선량한 가입자들이 보험료 인상이라는 폭탄을 맞았다.
2016년 보험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상위 10% 보험금 청구자가 전체 보험금의 절반을 수령하고 있다. 일부 보험계약자의 과다 이용(보험쇼핑)에 따른 보험료 인상분은 병원 방문 빈도가 낮은 대다수 보험계약자가 부담하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문재인 정부는 핵심공약인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실손보험 정상화를 위한 교두보로 비급여의 표준화를 선택했다”며 “비급여 표준화 시 이런 관행은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게 돼 실손보험 손해율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업계의 강력한 반대로 제도 정착에 진통이 예상된다. 3400개 내외의 비급여 항목에 가격을 매기고 본인 부담률을 책정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보험업계 고위 관계자는 “의료업계의 만연한 비급여 과잉진료를 막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의료계의 상당한 반발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우량고객을 중심으로 실손보험 해지 고객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63%에서 70%로 확대된다는 것은 보험 가입자의 부담 비중이 7%포인트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실손보험 해지 우려는 과도하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보험 가입자들이 단기적인 필요성보다 향후 ‘혹시 모를’ 의료비 부담에 대비해 실손보험을 가입했다는 판단에서다.
김도하 SK증권 연구원은 “7%포인트 비중 축소가 의료비 부담에 대한 리스크 이전 기능을 포기할 수준은 아니다”며 “의료비 부담 경감으로 실손보험 해약이 일부 발생할 수는 있으나, 우려를 야기할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