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9094만원, 남성 7030만원.. 국민 예상보다 3배 이상 많아 4명 중 1명은 민영보험 없어
부산에 거주하는 주부 성모(57)씨는 2008년 폐암 1기 진단을 받았다. 두 차례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5년 뒤 암이 유방으로 전이됐다. 60평짜리 아파트에 살며 고급 승용차를 굴리던 성씨 가족은 성씨가 한 달 1000만원에 달하는 신약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다. 성씨는 "해당 신약이 2015년부터 건강보험 처리가 되긴 했지만, 검사·수술·입원·요양병원 등 건강보험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며 "암보장보험, 실손의료보험 등 개인 보험이 있었는데도 투병 생활이 길어지자 감당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결국 성씨 가족은 아파트와 자가용을 처분했고, 하루 7만원에 달하는 간병비를 아끼기 위해 남편도 일을 그만두고 직접 병수발에 나섰다. 수입이 끊기면서 결국 성씨 가족은 파산 신청을 했다.
노후에 갑작스러운 질병에 걸리면 걷잡을 수 없는 치료비 때문에 파산에 이르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노후 의료비가 '실버 파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다. 노후 대책은 부족한데, 기대 수명 증가로 노후에 큰 병을 치를 확률이 높아지다 보니 평생 모은 재산마저 병원비로 소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만 65세 이후 의료비 8100만원 들어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6년 의료비통계지표'와 통계청 '2015년 생명표'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이 만 65세 이후 필요한 총의료비는 1인당 평균 8100만원으로 파악됐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오래 산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여성(9094만원)이 남성(7030만원)보다 노후 의료비로 2000만원가량이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노후 의료비 8100만원은 우리 국민의 통상적인 예상 수준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작년 8월 국내 20~60대 경제활동 종사자 155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들이 예상한 노후 의료비 평균은 2538만원이었다. 응답자 10명 중 6명은 '500만원 미만으로 노후에 필요한 의료·간병비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 4명 중 1명 '노후 의료비 충당할 민영보험 없어'
노후 의료비로 8100만원이나 들 것으로 추정되지만, 우리 국민이 민간 보험으로 해결할 액수는 1000만원에도 못 미친다.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에 따르면 국민 4명 중 1명은 노후 의료비에 대비해 민영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체의 절반 이상은 의료비 보장 액수가 500만원도 안 되는 소액 보험에 가입하고 있었다. 전체 평균으로 보면 민간 보험으로 충당할 수 있는 액수는 955만원에 불과했다.
특히 노후 의료비 준비도 양극화가 뚜렷했다. 소득 하위 20% 저소득층이 현재 가입한 민영보험으로 충당할 수 있는 노후의료비는 689만원이었다. 소득 상위 20%(1337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이수창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은 "일본의 노후 파산 사례에서 보듯 노후 의료비는 노후 빈곤을 심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라며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공적 사회 안전망이 취약한 만큼 더 큰 사회 문제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후 의료비 급증에 건강보험 재정 악화…민영 건강보험 가입해야
노후 의료비에 대한 부족한 대책은 국가 전체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만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전년 대비 0.4%포인트 늘어난 12.7%였다. 하지만 이들이 총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 대비 1.1%포인트 오른 38.7%(25조187억원)였다. 노령 인구의 증가 속도보다 이들의 의료비 증가 속도가 더 빠른 것이다.
정부는 고령화로 인한 노인 의료비 증가 등으로 건강보험 지출이 연평균 8.7% 증가, 2018년이면 건강보험 재정이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추정한다. 2016년 52조6000억원 수준이던 건강보험 지출은 2024년 1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는 "노후 생활비를 준비하는 것 이상으로 노후 의료비에 대한 준비가 중요하며 노후 준비에 대한 인식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평소 적절한 운동과 꾸준한 검진으로 질병 발생 가능성을 줄이는 한편, 자신에게 맞는 민영 건강보험이나 간병보험을 가입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